
청년 취업이 사회 문제였던 때이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를 뜻하는 ‘이태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태백’을 정확히 지냈던 시절에 나왔던 ‘표백’이다. 책 속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처지였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갔던 책이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공감이 남아있을까?

‘표백’은 이제는 스타작가가 된 장강명의 2011년 작 소설이다. 작가는 청년들을 사회의 요구대로 만드는 과정을 ‘표백’이라 부른다. 이미 완성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표백된 청년들이 자살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다. 소설 속 현재의 이야기와 자살의 계획을 담은 '잡기'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와 스릴러 같은 이야기 구조로 거침없이 읽을 수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재벌의 유력한 후계자의 자살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어중간한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는 나는 하루하루를 자조하며 보내던 중 휘영, 병권, 그리고 오묘한 매력을 지닌 미녀 세연과 어울리게 된다. 완성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험 점수를 잘 받거나, 좋은 대학, 직업을 갖는 시시한 일뿐이라는 세연의 이야기에 나는 자각한다. 어느 날, 세연을 따르는 ‘추’를 만나게 되고, 그와 사귀게 된다. 나는 ‘추’와 7급 공무원 준비를 하지만, 실패로 방황하던 중 세연은 ‘잡기’라는 비밀 파일을 남기고 의문의 자살을 한다.

시간이 지나 7급 공무원이 된 나는 무료한 삶을 살다 기자가 된 휘영을 만난다. 휘영을 통해 ‘와이두유리브’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고, 사이트를 통해 ‘추’는 자살 선언한 후 자살한다. ‘잡기’를 통해 자살을 종용하는 사람이 세연임이 밝혀진다. ‘추’와 재벌 후계자도 그렇게 계획대로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사이트가 인기를 끌게 되는 사이, 병권도 자살 선언 후 자살한다. 나와 휘영은 이 모종의 사건을 파헤치고, 우연히 잡기의 모든 비밀을 풀게 된다. 세연의 계획에는 조력자가 있었는데, 세연이 죽은 후에도 계획의 완성을 위해 사이트를 운영한 자는 세연의 동생인 세화로 밝혀진다.

이 시대 청년들의 무력감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했다. 이미 완벽해서 노력으로는 바뀌지 않는 세상, 아예 희망을 버리거나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오히려 ‘표백’ 속 자살은 적극적인 저항이다. 저항이니까 동정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그래서 성취가 있을 때, 누구나 그 죽음에 의문을 가질 때 죽어야 한다. 표백된 하얀 세상 속에 오점을 하나 찍는 거다. 세상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노력이다. 하지만 살아내야 한다.

항상 청춘은 그래왔다. 역사의 후발주자이기에 기존의 틀을 따라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청춘들은 매번 어떠한 방식으로든 움직여 왔고, 앞으로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반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는 어차피 부조리다. 죽음도 그렇다. '표백'은 20세기 카뮈가 '이방인'에서 말한 부조리를 21세기 식으로 풀어냈다. 부조리를 인정하면 세계는 사소한 것들이다. 다만, 청춘이 겪는 부조리는 그들이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마주한 시련이니까 더욱 시린 거다. 그러니 청춘들은 그것을 더욱 인정하고 살아줬으면 한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기존 세대들이 할 일은 그들의 유별남이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라는 외침으로 따뜻하게 받아 주는 것이다.
- 저자
- 장강명
- 출판
- 한겨레출판사
- 출판일
- 201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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