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중반, 가짜뉴스가 사회 문제로 등장했던 때이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조차 가짜뉴스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라며 옹호할 정도였으니, 가짜뉴스의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윤리가 대두되었고,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에 관한 내용의 소설인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한때 회자가 됐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황색언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 참여적 성격의 소설이다. 작가가 독일의 언론과 다툼을 한 실제 체험을 계기로 언론을 고발하는 내용을 소설에 담았다.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한 인간의 삶과 명예가 무너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독일 한 도시의 카니발 기간 중 '차이퉁'의 기자인 퇴트게스가 피살된 채 발견되고, 범인은 즉시 자수한다. 범인은 프리랜서인 20대 여성 카타리나다. 사건 5일 전부터 그는 현상수배범인 괴텐을 숨겨주고 도피를 도왔다는 이유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주택을 소유하고, 알 수 없는 행적의 드라이브를 취미로 가진 점 때문에 의심받는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 이혼 경력의 과거까지 밝혀지면서 '차이퉁'에서는 그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낙인을 찍는다. 그의 집에 신사들이 들락거린다는 이웃의 진술까지 더해지면서 '차이퉁'은 그를 문란한 행실을 가진 여성으로 그린다. 그 사이 괴텐은 체포되고, 카타리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또한,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블로르나 변호사와 같은 지인들도 도와주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에게 혐오적 시선을 보내며 성희롱까지 하게 된다. 퇴트게스는 병환에 있는 그의 어머니까지 찾아가 딸의 소식을 알리며 무리한 취재를 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어머니는 죽는다. 카타리나는 퇴트게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자리에서 그에게 성희롱당하고, 총으로 그를 죽인다.

소설의 첫 장부터 독일의 신문인 '빌트'와 관련이 없음을 밝히지만, 하인리히 뵐이 겪었던 언론과의 대립을 안다면 충분히 실제를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신선하다. 사건이 벌어진 5일간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추적하는 방식으로 추리소설 같은 느낌도 준다. 화자는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지 않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언론의 조작적 보도와는 다름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이 소설의 부재는 '혹은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카타리나는 결론적으로 살인이라는 폭력을 저지르지만,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도 폭력이라는 것이다. 카타리나는 괴텐을 단순히 이성적 호감 때문에 만난 것이다. 괴텐을 도운 것을 시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론은 사실에 부합하는 근거 없이, 카타리나의 과거와 경력(사실 부도덕한 점도 없다)이 상식에 맞지 않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그를 이미 범죄자로 규정짓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에 더해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은 기사를 무감각하게 수용하고, 그렇게 카타리나의 재판이 끝난 것이다. 자극적인 보도는 물론,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후에 진실이 밝혀져도 그때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언론을 사회의 소금으로만 볼 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인정해야 한다. 언론의 속성이 그런 거다. 결국은 독자가 더 똑똑한 안목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언론을 지켜보야 함을 소설은 역설한다.
- 저자
- 하인리히 뵐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0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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