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 인류가 마주한 혼란은 전염된 집단에 대한 혐오의 정서부터 혼란을 함께 이겨내려는 연대의 정서까지 인간의 상반된 본능을 목격하는 계기가 됐다.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 동시에 인간이 가진 극복의 힘에 눈뜨는 시간이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로 전염병이 창궐한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렸다. 2008년에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문단을 나누지 않는 작가 특유의 문체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끊기지 않는 리듬으로 술술 읽히기도 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코로나19처럼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능을 통찰한다. 한 사람씩 눈이 머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한 사람이라는 독특한 설정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혼란과 갈등에 주목한다. 한편으로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희망도 담고 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하얗게 먼다. 그 남자는 안과를 찾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똑같이 눈이 먼다. 눈이 먼 사람들과 그들과 접촉했던 이들은 폐병동에 격리가 된다. 그중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 의사의 아내는 스스로 남편을 따라가고, 남편 외 다른 사람들에겐 그 사실을 숨긴다. 격리자의 감시와 관리는 군인이 맡는데, 병동은 일대 혼란을 겪는 와중 경계를 넘는 눈먼 사람 하나가 군인에게 사살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이후, 더 많은 눈먼 자들과 접촉자들은 폐병동에 들어온다. 병동은 오물과 배설물로 뒤덮여 아수라장이 된다. 격리자들끼리 배급되는 음식물로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들 중 폭력집단이 총을 무기로 음식물을 차지한다. 그들은 음식물의 대가로 금품과 성상납을 요구하고 병동은 야만의 현장이 된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이 참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폭력집단의 두목을 죽이게 된다. 그 집단의 또 다른 눈먼 자가 두목이 되지만, 폭력에 참지 못한 대다수의 눈먼 자들이 전세를 역전시킨다. 다툼 끝에 병동은 불타게 되고, 일부만이 살아남아 병동을 탈출한다.
의사의 아내는 살아남은 자들의 눈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도시의 모든 사람이 눈이 먼 폐허가 됐다. 병동을 탈출한 최초의 눈먼 자들은 지옥 같은 도시 속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사 아내의 인도로 버틴다. 그들은 최후의 선택으로 도시를 떠날 것을 결정한 순간, 한 명씩 시력을 되찾게 된다. 마침 의사의 아내는 하늘이 하얀 것을 보고 본인도 눈이 멀었을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테라스 밑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도시는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선을 넘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해서 ‘OO에 눈먼 사람들’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소설에서는 실제 눈먼 자들이 등장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모든 눈먼 자들은 공포 속에서 이기적 존재가 된다. 음식물 앞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동물적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에 인간다움의 상징인 도덕, 양심도 사라진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눈먼 자들이 된 것이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회라는 것도 보여준다. 눈 뜬 자를 중심으로 한 무리는 갈등은 하지만 결국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는 연대와 소통이다. 서로가 의지하며 사회적 연대체가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분명 디스토피아적 성격의 소설임이 틀림없다. 모호하지만 마지막 장면도 미래의 암울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눈이 먼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답을 읽을 수 있다면, 마냥 어두운 소설로만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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